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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과 숭고함의 감정에 관한 고찰 (커버이미지)
아름다움과 숭고함의 감정에 관한 고찰
  •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임마누엘 칸트 (지은이), 이재준 (옮긴이) 
  • 출판사책세상 
  • 출판일2019-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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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1. 미학 이전의 미학, 칸트의《고찰》
이마누엘 칸트는 근대 철학의 완성자로 일컬어진다. 이러한 그의 업적은 미학 영역에서도 적지 않아서 칸트 미학이 집대성되어 있다고 평가받는《판단력 비판Kritik der Urteilskraft》(1790)은 미학사에 일대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예술을 학문이나 도덕의 범주 내에서 파악하려는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나 학문과 도덕, 예술 각 영역의 근대적 분화와 독자성을 강조하고 나아가 예술의 자율성을 정립했다.
이번에 책세상에서 소개되는 칸트의《아름다움과 숭고함의 감정에 관한 고찰》(책세상문고?고전의 세계 048)은《판단력 비판》보다 26년 앞선 1765년에 씌어진 글로 칸트 미학의 단초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기존의 칸트 연구에서는 칸트의 사상이 세 비판서를 저술한 시점 이전인 ‘비판 이전’과 그 이후인 ‘비판 이후’로 단절하여 파악됨으로써 이 책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간과되어왔다. 그러나 이 책에서 드러난 숭고함과 아름다움, 이에 상응하는 느낌으로서의 감정이라는 단초가 이후《판단력 비판》에서 발전적으로 계승되어 보다 엄밀한 개념들을 통해 개진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젊은 칸트가 평생에 걸친 미학적 고민들을 숙고한 흔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미학 이전의 미학’으로 규정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자유분방하고 에세이적인 필치로 씌어졌기 때문에, 독자들이 쉽게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고 딱딱한《판단력 비판》을 읽기 위한 입문서로서도 손색이 없다.

2. 계몽주의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다―이성과 감정의 종합
칸트의 활동 무대인 계몽주의 시대의 미학은 어떠한 지형도를 그리고 있었을까? 그때는 형식적이고 형이상학적 아름다움을 중시한 고전주의 미학이 여전히 건재한 가운데 점차 새로운 미학 이론들이 생겨나고 상호 작용을 하던 무렵이었다. 새로운 미학 이론은 주관적인 감정을 아름다움의 주요한 계기로 인식하는 정감론 미학과 대상에 내재된 객관적 속성을 파악하고자 하는 이성론 미학으로 대별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씌어진 이 책에서는 고전주의 미학에서 억압된 감각과 감정을 구제될 뿐만 아니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두 가지 근원, 즉 이성과 감정의 종합이 시도된다. 다시 말해 칸트는 아름다움을 개념이 아닌 감정으로 전환시키면서도 감정이라는 주관적 판단을 객관적으로 정당화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개별성과 보편성을 조화롭게 양립시키고자 했던 계몽주의의 적자(嫡子)로서의 칸트의 사상사적 입지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3. 여전히 유효한 칸트의 미학적 고민
만약 칸트의 말대로 감정이 아름다움의 한 계기라면 어떤 이에게는 아름답게 보이는 대상이 다른 이에게는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칸트는 감정이 주관적인 근거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논증은 할 수 없지만 논쟁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말로 감정의 절대적 보편성을 주장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관적인 감각이나 느낌에 사회적 보편성이 작용한다고 보아 이를 취미라는 개념으로 규정한 경험론 미학을 수용함으로써 개별과 보편 각각의 독립적인 상황을 인정한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우리의 감정이 일상의 구체적인 내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한, 더욱이 아름다움의 감정을 자아내는 대상들이 범람하고 물신화되어 어떤 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의 감정인지 알 수 없는 이 시대에 우리는 여전히 칸트의 이러한 미학적 고민을 안고 있다.

저자소개

1724년 4월 22일 프로이센(Preußen) 쾨니히스베르크(K?nigsberg)에서 수공업자의 아
들로 태어났다. 1730~32년까지 병원 부설 학교를, 1732~40년까지 오늘날 김나지움(Gymnasium)에 해당하는 콜레기움 프리데리키아눔(Collegium Fridericianum)을 다녔다. 1740년에 쾨니히스베르크대학교에 입학해 주로 철학, 수학, 자연과학을 공부했다. 1746년 대학 수업을 마친 후 10년 가까이 가정교사 생활을 했다. 1749년에 첫 저서 『살아 있는 힘의 참된 측정에 관한 사상』을 출판했다. 1755/56년도 겨울학기부터 사강사(Privatdozent)로 쾨니히스베르크대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자연신학 원칙과 도덕 원칙의 명확성에 관한 연구』(1764)가 1763년 베를린 학술원 현상 공모에서 2등상을 받았다. 1766년 쾨니히스베르크 왕립 도서관의 부사서로 일하게 됨으로써 처음으로 고정 급여를 받는 직책을 얻었다. 1770년 쾨니히스베르크대학교의 논리학과 형이상학을 담당하는 정교수가 되었고, 교수취임 논문으로 『감성계와 지성계의 형식과 원리』를 발표했다. 그 뒤 『순수이성비판』(1781), 『도덕형이상학 정초』(1785), 『실천이성비판』(1788), 『판단력비판』(1790), 『도덕형이상학』(1797) 등을 출판했다.
1786년 여름학기와 1788년 여름학기에 대학 총장직을 맡았고, 1796년 여름학기까지 강의했다. 1804년 2월 12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사망했고 2월 28일 대학 교회의 교수 묘지에 안장되었다. 칸트의 생애는 지극히 평범했다. 그의 생애에서 우리 관심을 끌 만한 사건을 굳이 들자면 『이성의 오롯한 한계 안의 종교』(1793) 때문에 검열 당국과 빚은 마찰을 언급할 수 있겠다. 더욱이 중년 이후 칸트는 일과표를 정확히 지키는 지극히 규칙적인 삶을 영위한다. 하지만 단조롭게 보이는 그의 삶은 의도적으로 노력한 결과였다. 그는 자기 삶에 방해가 되는 세인의 주목을 원하지 않았다. 세속적인 명예나 찬사는 그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목차

들어가는 말



제1장 숭고함과 아름다움의 감정이 갖는 다양한 대상에 관해

제2장 인간에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숭고함과 아름다움의 고유한 성질에 관해

제3장 여성과 남성의 상호 관계에서의 숭고함과 아름다움의 구별에 관해

제4장 숭고함과 아름다움의 여러 감정에 기인하는 한에서의 민족 특성에 관해



[해제] 미학 이전의 미학, 칸트의 <고찰>

1. 칸트의 삶에 대한 엇갈린 두가지 평가

2. 칸트 철학의 궤적에 대한 스케치

3. <고찰>이 탄생할 무렵 미학 이론의 지형도

(1) 이성론 미학의 영향과 <고찰>

(2) 경험론 미학의 영향 가운데 있는 <고찰>

4. <고찰>의 선례 : 버크의 <탐구>

5. 칸트의 <고찰>과 그의 미학

(1) <고찰>의 세 가지 판본

(2) <고찰>에서 <판단력 비판>까지

(3) <고찰>의 구성

ㄱ. 첫번째 장

ㄴ. 두번째 장

ㄷ. 세번째 장

ㄹ. 네번째 장





더 읽어야 할 자료들

옮긴이에 대하여

한줄 서평